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오전 7시 35분,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교황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전날 부활절 미사에서는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남겼고, 이는 그의 ‘유언’처럼 남았다.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페렐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며 “그는 삶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고, 신앙과 용기, 보편적 사랑으로 복음의 가치를 살아가라 가르쳤다”고 애도했다.
폐렴 투병 끝에 재기했지만… 마지막엔 “평화를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폐렴 진단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38일간 치료를 받았다. 양쪽 폐의 염증, 혈소판 감소, 빈혈 등으로 고통을 겪었고, 산소 치료와 수혈을 반복했다. 3월 23일 퇴원한 뒤에는 회복세를 보이며 교황청 손님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업무를 재개했다.
지난 2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대축일 미사에도 직접 참석한 그는, 신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희망’과 ‘평화’를 강조했다. 특히 부활절 메시지에서 “가자지구의 상황은 개탄스럽다”며 “전쟁 당사자들은 휴전을 수용하고 인질을 석방하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그는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과 함께 희망을 새롭게 품길 바란다”고 말하며, 생애 마지막까지도 전쟁 종식과 인류의 연대를 외쳤다.
청빈과 개혁, ‘서민의 교황’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린 시절 양말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도왔다. 식품화학을 공부하다 사제직을 택한 그는 1958년 예수회에 입회, 1969년 사제로 서품됐고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비유럽권 최초이자 남미 출신으로선 첫 교황이었다.
그는 허름한 구두에 철제 십자가, 소형차와 공동숙소를 택하며 사치와 권위를 멀리했고, 교황궁 대신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물렀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의 틀을 허물고 소수자, 여성, 평신도에 대한 포용적 개혁을 추진했으며, 동성 커플 축복 허용, 추기경 인사 개편 등으로 교회 개혁에 앞장섰다.
“세상 속으로 내려간 교황”
그는 평생을 전쟁과 갈등의 현장에서 평화를 호소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2015년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2017년엔 미얀마의 로힝야족 문제, 2021년에는 교황 최초로 이라크를 방문해 테러 피해자를 위로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에도 연달아 ‘민간인 보호’와 ‘종전’을 촉구했다.
2014년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그는 광화문 시복 미사와 아시아 청년대회를 집전하며 한반도 평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방북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점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사임은 없다, 그저 늙었을 뿐”
최근 몇 년간 무릎과 장 건강 악화, 탈장 수술 등으로 건강 우려가 있었지만, 교황은 끝까지 사임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월 출간된 자서전 ㅡ<희망>에서 “수술 중에도 사임을 고민한 적 없다. 나는 건강하다. 다만 늙었을 뿐”이라며 교황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장례는 ‘소박하게’… “다른 그리스도인처럼”
생전 “교황의 장례는 간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에 따라, 장례는 성대함을 배제하고 간결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화려한 제대와 특별 의식을 없애고, 품위는 지키되 단순하게 보내달라”고 밝혔다.
현재 콘클라베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 138명 중 110명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임명했으며, 교황 선출은 조만간 차기 교황 선출 일정과 함께 본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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